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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4 일 개최 河野剛彦 (가쿠슈인대학 대학원 박사후기 과정) 「아이치현(愛知県) 도자(陶磁)자료관 조사보고•수중 고고학 실습보고」 柏倉伸哉 (가쿠슈인대학 PD공동 연구원) 「동주진한(東周秦漢)시기 임치(臨淄)지역에서 본 주민과 교류의 제모습」 【河野 보고 요지】 작년 8월 19 - 21일에 걸쳐 시즈오카현(静岡県) 土肥에서 실시한 수중 고고학 실습 및 올해 1월 13일에 아이치현 도자(陶磁)자료관 방문에 관한 보고를 행하였다. 수중 고고학 실습에서는 다이빙 실습을 수강한 것으로 수중 활동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도자자료관에서는 헤이안시기부터 카마쿠라시기에 걸쳐서 실제 사용되있던 요적(窯跡)을 견학하여 도자기에 관한 지견이 깊어질 수 있었다. 【柏倉 보고 요지】 고고유체(考古遺体)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이용한 계통 분류라고 하는 최신 연구에 관한 보고를 실시했다. 미토콘드리아 DNA를 이용해 모계 유전 계통을 분류하는 것으로, 기존의 연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나 문화 등의 교류를 상세히 추측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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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3 일 개최 鄒怡 (복단대학 역사지리 연구중심 조리(助利)연구원) 「휘주(徽州) 다업(茶業)센터 둔계(屯渓)의 지위 확립 -다업의 주변 산업에서 보다-」 小武海櫻子 (가쿠슈인대학 대학원 박사후기 과정) 「바다를 통해 퍼지는 민간 종교 단체 -근대 홍콩의 사례를 중심으로-」 【鄒 보고 요지】 휘주는 현재의 황산시(黄山市)에 해당되며, 안휘성 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둔계는 현재 황산시의 시소재지에 해당된다. 둔계는 명대 중기부터 차츰 해당지역의 차 산업에 있어 가공•무역의 중심지로서 발전하였다. 지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신안강(新安江) 상류에 위치하는 둔계는 교통 조건이 반드시 양호하다라고는 할 수 없다. 본 보고에서는 명대 중기 이후까지 거슬러 올라가 휘주 차 산업의 유통 루트가 광주(広州) 1곳으로 한정되었던 것을 지적하고, 그것이 둔계가 해당지역에서 차 산업의 중심지로서 발전할 수 계기가 되었다고 보았다. 아편 전쟁 이후 차의 유통에 변화가 생겼는데, 이는 차의 가공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 차의 주변 산업의 집중을 재촉하였고 이로써 둔계의 도시로서의 지위는 확립되게 된다. 이 때문에 차 산업에 있어 둔계의 주도적인 위치는 거의 손실을 입지 않았다. 오히려 둔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교통 네트워크가 구축•전개되어 둔계의 기반은 강화되었고 그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 【小武海 보고 요지】 현대 홍콩의 도교(道教)는 「3교일치」라고 하는 문화적 기풍과 폭넓은 사회층의 재가신도(在家信徒)에 의해 1950년 이후 반세기에 걸쳐 발전해왔다. 하지만 그 역사적 기원은 비교적 새로운 편인데, 20 세기 초 중국에서 구제와 도덕을 주창하는 여러 형태의 신흥 민간 종교 단체에 그 기원이 있다. 홍콩에 있어서는 1930년대까지 呂祖道堂이나 先天道, 同善社가 재가신도인 지식인이나 상인, 미혼 여성을 주축으로 정착해 나갔고, 광동성으로부터 홍콩, 마카오, 동남아시아까지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1950년대 이후 홍콩의 민간 종교 단체는 모두 도교 조직의 형태를 취해 활동하였으며, 사람들의 요구에 응하면서 사회와 공존해 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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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3일 개최 水野 卓(専修大学 비상근 강사) 「2007년도 운하반 조사보고」 大多和朋子 (가쿠슈인대학 대학원 박사후기 과정) 「2007년도 교류 네트워크반 하계 공동조사보고」 【水野 보고 요지】 본 보고는 운하반이 2007년 8월 3일부터 11일에 걸쳐 실시한 것으로 작년도의 邗溝 조사의 연장선상에서 회안(淮安) 이북의 운하를 조사한 내용이다. 조사의 중심이 된 도시는 회안과 서주(徐州)이다. 회안에서는「南船北馬」라고 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는 청대의 비(碑)나 명청대에 조운을 주관하기 위해 설치된 총독조운공서(総督漕運公署) 유적을 방문하였다.「以前」의 운하의 의의를 생각해 서주에서는 경항(京杭)대운하나 운하의 급수지 중 하나인 미산호(微山湖)를 실제 배를 타고 항행하여 「現在」의 운하와 사람들과의 관계를 모색하였다. 【大多和 보고 요지】 07년도 하계 일본해(동해) 조사는 노토(能登)반도를 중심으로 北陸 3県의 후쿠라(福良), 츠루가(敦賀) 등의 항만이나 도래인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유적 등을 조사하였다. 이 지방은 고대에는 발해와의 견사(遣使)와 교역의 요충지로서, 중세에는 제염, 제철, 도기 등의 공업 생산지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또 교류, 교역의 요충이자 사람의 왕래가 많던 곳이기 때문에 옛부터 여러가지 신앙이 뿌리내려 있어, 항해의 안전이나 토지에 대한 외경(畏敬)을 나타내는 신사나 사원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고대에 있어 수도에서의 거리, 교통의 편리성, 외국으로 열린 항구가 갖추어진 「越(こし)」지방의 중요성을 새로운 시점에서 인식하는 것과 동시에, 근대에 있어 츠루가 등이 담당한 역할(고대를 통해 일본해를 재발견했다)도 상기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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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13일 개최 中村威也(다이토문화대학 인문과학연구소겸임연구원) 「2007년도 해항반 조사보고」 石川晶(각슈인대학 대학원박사후기과정) 「청대의 약재유통에 대해서―樟樹鎮 약재상인의 전개를 중심으로―」 【中村 보고요지】 2007년도의 섹션Ⅰ 해항해운반은 2007년 7월 30일~8월 1일에 河北省 秦皇島市의 老龍頭・山海関, 인접하는 遼寧省 綏中県의 秦漢建築 유적의 견학, 조사를 실시하고(矢沢忠之氏와 中村), 8월 6일~7일에 山東省 淄博市 일대의 戰國齊國의 유적(二王陵・四王陵 등의 墳丘, 齊國故城)이나 관련된 박물관 들의 견학, 조사를 실시하였다(柏倉伸哉氏、矢沢氏와 中村). 조사지 내에서도 齊國故城의 배수도 유적과 臨淄의 古車박물관은 비교적 새로운 발굴성과에 의하는 것이었다. 【石川 보고요지】 江西省 臨江府 清江県의 북동에 위치한 樟樹鎮는 청대에 있어서 전국 약재유통의 최대 중요거점지였다. 樟樹鎮의 약재상인은 江西省 내는 물론 중국 각지로 진출해 그 판로를 확대시켜, 湖南省의 湘潭이나 四川省의 重慶 등의 대규모로 진출한 지역에서는 그러한 도시의 상업 전체에, 또 지역행정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가졌다. 본 보고에서는 그들 樟樹鎮 약재상인의 전국전개의 추이와 그 배경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또 특수하고 복잡한 유통체계를 가진 청대의 약재유통 및 그 담당자인 약재상인의 실상에 다가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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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9일 개최 李志淑(경북대학교강사・각슈인대학객원연구원) 「고려시대 官人의 刑罰에 대해서」 【李 보고요지】 高麗의 刑罰制度에 대해서 그동안 적지않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지만, 唐律을 그대로 準用하였다고 이해하거나 법제사적인 측면에 더 기울어졌었기에, 고려시대 형벌제도의 진면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이에 五刑을 중심으로 高麗官人들에게 실제로 행해진 형벌사례를 분석하면서, 刑罰의 類型과 執行, 그들의 對應, 赦免과 復職, 이 후의 動向 등에 대해 검토해 보았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서 고려관인의 형벌에 대한 이해뿐만이 아니라, 官職運用, 官僚生活, 政治・社會相의 一面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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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4일 개최 中西大輔(学習院大学 大学院 博士後期課程)「古代 東아시아와 會稽郡」 野本敬(学習院大学 大学院 博士後期課程)「雲南省 調査報告」 【中西보고요지】 漢代 江南의 會稽郡(현재의 江蘇省 남부・浙江省・福建省)은 춘추시대 呉・越의 지역이다. 呉는 周王室의 혈통을 받은 太伯, 越은 聖王禹의 후예라고 되어 있다. 呉・越은 동아시아해 연안에 위치해 해상활동이 번성하였다. 呉・越의 文化・習俗인 稲作・潜水漁法・養蚕・文身・黒歯・鬼道 등은 日本・琉球・台湾 등 동아시아해 제국에의 파급을 볼 수 있다. 또 중국의 문헌에는 倭人을 太伯의 후예로 칭하고, 자주 會稽에 오고, 교역을 하였으며, 왜국을 會稽郡의 동쪽에 위치한다는 기술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會稽郡은 동아시아해 제국의 교류에 있어서 중요한 열쇠가 되는 지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3세기 江南의 으뜸을 칭한 孫呉政権의 公孫氏・高句麗 등과의 적극적인 동아시아 해상의 외교정책은 왜국에도 신장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일본에서 발견된 呉의 연호 赤烏가 새겨져 있는 거울의 존재는 그것을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正史『三國志』는 晋의 입장에서 기록되고 있어 呉의 해외발전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이 많아 왜국과의 교류도 굳이 기술되지 않았던 일이 있다. 이번 발표에서는 동아시아해 해상교류의 중국측의 거점인 會稽郡과 일본에 가져다 준 江南文物에 관한 정보와 선행연구의 정리를 하여 향후 연구의 기초로 하였다. 【野本보고요지】 2007년 6월 20일~7월 19일에 楊偉兵 副教授(復旦大学 歴史地理研究中心) 및 武内房司 教授와 공동으로 실시한 雲南省 현지조사에 대해서 보고하였다. 雲南省남부의 紅河哈尼族彝族자치주 및 서부의 大理白族자치주에 있어서 近代交通・陸路移民・鑛山開發・水利・塩生産에 관한 고적답사와 자료수집을 실시하였다. 향후 성과발표를 위해 자료정리와 연구를 진행시킬 예정이다. 또 2008년 예정의 국제회의 등 향후의 공동연구의 진척에 대해서도 보고가 이루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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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7일 개최 河野剛彦(学習院大学 大学院 博士後期課程) 「唐의 外國人授官 傾向에서 보이는 東아시아」 矢沢忠之(学習院大学 大学院 博士後期課程) 「秦漢時代의 山東半島에서의 戰國齊의 貨幣文化」 【河野보고요지】 唐에 의한 주변국을 대상으로 한 官爵受與에는 唐측의 주변국에 대한 평가가 나타나고 있다. 본 보고에서는 나라마다의 관작수여 경향을 개관하였다. 突厥・突騎施・吐蕃・契丹・靺鞨에 대해서는 爵位・武職事官・地方官을 중심으로 수여하고, 渤海・高麗・百濟・新羅・南詔・日本에 대해서는 爵位・文職事官・地方官・文散官을 중심으로 수여한다는 관작수여 경향에 있어서의 지역적 차이에 대한 분석결과를 말하였다. 그리고 관작수여의 요인으로 유목계인가 아닌가와 한자문화 수용의 유무를 들었다. 【矢沢보고요지】 秦漢제국의 성립에 따르는 半兩錢에의 통일에 의해서 전국화폐는 도태되었다. 그러나 산동반도 동부(東莱・東斉)에서는 後漢末에 이르러서도 墓中錢을 받아들이지 않는 습속이 남아 있음을 출토사례로부터 엿볼 수 있다. 이 지역에서는 戰國齊의 중량단위도 잔존하고 있어 함께 전국화폐에 附隨하는 중요한 문화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화폐 그 자체는 통일에 의해 도태되어 소멸하였지만 화폐에 附隨하고 있던 문화는 後漢末까지 잔존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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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4일 개최 楊偉兵(復旦大学 歴史地理研究中心 副教授) 「清代前中期 雲貴地區의 政治地理와 社會環境」 野本敬(学習院大学 大学院 博士後期課程) 「雲南의 「開発」과 環境」 【楊보고요지】 清代前中期 雲貴地區에서는 중앙왕조가 변경민족지구를 직접통치하기 위해서 府州의 昇降, 直轄地化라는 행정조정을 하였다. 楊偉兵氏는 그 정치적 과정의 진도와 분포상황을 정밀하게 검증해서 정치제도의 불균형 침투와 거기에서 나오는 사회문제를 지적하여, 清朝의 直轄地化가 지역사회를 새롭게 하였다는 종래의 인식에 再考를 더하였다. 그리고 민족생태의 복잡성(complex systems)과 직접지배의 한계를 나타내는 한편, 그 후의 移民개발이 雲貴地區에 인구증가나 경제발전 등의 변화를 가져와 정치제도상의 통일을 실현한 것을 밝혔다. 【野本보고요지】 海域세계에서는 일견 雲南 등 중국내륙지역은 관계가 소원한 「邊境」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태환경의 악화에 따라 환경보전이나 생태자원의 지속적인 이용의 규범의식이 생겨나고 石碑 등에 남겨지게 되는 배경에는 현지의 直轄地化와 외부의 移民에 의한 「開發」등 全중국적 구조변동이 있었다. 또 「近代」로의 이행과정에서 雲南은 東・東南아시아 海域이나 인도양을 매개하는 지적교류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숱한 근대적 사상의 결절점이 된 것이라, 「海域」「環境」「文明」이라는 키워드로부터 보다 풍부한 세계상을 표시하는 초점으로 충분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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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21일 개최 村松弘一(学習院大学 東洋文化研究所 助手) 「韓國水利遺跡 現地調査報告」 放生育王(学習院大学 大学院 博士後期課程) 「上海・復旦大学 留学記」 【村松보고요지】 2006년 12월 21일~26일에 실시한 한국고대수리시설 현지조사에 대하서 보고하였다. 碧骨堤(金堤)・菁堤(永川)・宮南池(扶余)・鴈鴨池・書出池(慶州)・恭儉池(尚州)를 방문하였다. 또 근년에 발견된 한국 最古의 水田 유적인 芋田里 유적(安東)도 방문하였다. 경북대학교와의 한일공동학술조사로서 행하여져 李文基 교수를 중심으로 한 한국측과 제휴하여 조사를 진행시킨 것도 보고가 이루어졌다. 【放生보고요지】 본보고는 2006년 9월~2007년 3월까지 中國・上海・復旦대학의 유학기를 중심으로 한다. 이는 향후 上海 교류사무국에 교류연구원으로서 파견되는 사람들에게 참고가 될 것이다. 우선 유학까지의 구체적인 수속에 대해 보고하였다. 특히 비자・임시거류허가서의 취득 등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점을 강조하였다. 다음에 上海 교류사무국의 모습을 보고하여 현지연구에 있어서의 중간역할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그 외에 復旦대학 역사지리연구중심의 概況(主研究者・開講科目 등)이나 현지연구자와의 구체적인 교류(嘉定孔子廟調査), 현지조사(鄭州・洛陽訪問)등 향후의 연구기초가 될 수 있는 내용도 보고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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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24일 개최 福島恵(学習院大学 大学院 博士後期課程) 「港班 06년도 調査報告―泉州・아모이―」 倉嶋真美(学習院大学 大学院 博士後期課程) 「多久聖廟 調査」 【福島보고요지】 금년도의 港班은 「동아시아해 문명과 환경」이라는 관점에서 대륙과 바다의 접점으로서의 해항도시 위치설정을 분명히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일찌기 해항도시로서 번영한 중국 泉州를 중심으로 유적・문물 및 경관을 관찰을 실시하였다. 마르코 폴로 『東方見聞録』의 자이퉁市 기재와 비교하면서 조사지를 소개해 해항도시 泉州의 성쇠와 환경과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였다. 【倉嶋보고요지】 「사상과 지식의 네트워크반」은 동아시아해 주변에 있어서 전파한 사상과 지식의 수용과 전개 본연의 자세를 검토한다. 이번에 佐賀県 多久市의 多久聖廟에서 행해진 공자를 모시는 「釈菜의 儀」에 대해서 보고를 실시하였다. 多久聖廟의 歴史는300년에 이르기까지 釋菜의 의식은 한번도 끊어지지 않고 행해지고 있다. 多久는 일본에 전해지는 釋菜의 의식 중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 양식은 明代에 전해 진 것이라고 하는데 현재까지 바뀌지 않고 계승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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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22일 개최 島暁彦(東京大学 大学院 博士後期課程) 「朝鮮의 對外使節「燕行使」의 經路와 日程 ―17세기후반 이후를 중심으로」 崔弘昭(慶北大学校講師・学習院大学客員研究員) 「新羅下代의 渡唐留學과 崔承祐」 【島보고요지】 「燕行使」는 조선에서 중국에 파견된 공식외교사절로, 조선시대에서 清朝에 이르기까지 빈번히 파견되어 조선과 청과의 「外交」관계를 담당했다. 「燕行使」의 서울―북경간의 정기적인 경로는 종래 3가지 정도로 하는 견해와 2가지 정도로 하는 견해가 있었다. 그러나 전자는 「燕行使」일행 일부만이 사용한 심양 경유의 경로도 포람된 것으로, 「燕行使」일해 전체의 정기적인 경로는 1679년 이전의 경로와 1679년 이후의 경로 2가지 정도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崔보고요지】 신라말의 대표적인 渡唐留學生의 출신으로, 후삼국시대(신라・후백제・후고구려→고려), 후백제의 정권에 대해 문인관료로서 관직에 오른 崔承祐에 대해서는 그 역사적인 위상에도 불구하고 연구성과를 거의 볼 수가 없었다. 보고자는 崔承祐와 그 시대를 「渡唐留学의 盛行」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개관하여 그 다음에 渡唐留學과 당으로의 교제관계에 대해 검토하였다. 또한 지식인의 현실인식과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崔承祐의 생애를 분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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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25일 개최 長谷川順二(学習院大学 大学院 博士後期課程) 「黄河故河道 調査記」 黄河故河道조사로서는 3번째에 해당하는 본조사에서는 河南省滑県에서 新郷市, 延津県을 거쳐 武陟県에 이르는 범위를 방문하였다. 여기는 戰國이전부터 北宋末에 이르는 1000년 이상의 긴 기간, 황하가 흐르고 있어 남쪽으로는 洛陽・鄭州, 북쪽으로는 鄴城을 안고있는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지역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枋頭城・汲県故城・故巻県 등 前漢에서 南北朝 시기의 都城유적을 견한하였다. 그 외에도 이 지역에는 宋代 이전에 형성되어 지금도 남아있는 황하제방의 흔적이 있다. 延津県에서는 현을 전적으로 이 흔적을 「黄河故道」라고 부르고 자연보호구역이나 삼림공원 등으로 만들고 있었다(사진). 방치되거나 개발에 의해서 고대의 유적이나 흔적이 사라져 가는 가운데 이와 같은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있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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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27일 개최 濱川栄(共立女子大学 非常勤講師)「邗溝 調査報告~中国最古의 運河를 방문하고」 牧飛鳥(学習院大学 大学院 博士後期課程)「2006년도 日本海 調査報告」 浜川보고는 7월 28일~8월 4일에 실시되었던 運河班 邗溝조사에 대해 조사의 개요(揚州・高郵・淮安)와 향후의 전망에 대해서 보고되었습니다. 대운하의 航行에 해당하는 苦労이나 高郵文游台에 있어서의 1931년 淮河범람의 사진전시에 관한 화제는 순수하고 흥미롭고, 무엇보다 현지에서만 얻을 수 있는 관점으로부터 カン溝의 설비에 관한 전망이나 동방 대평원의 위치설정이 언급되었습니다. 牧보고에서는 8월 8일~11일에 실시되었던 青森・函館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해 조사에 대해서 조사일정과 유적의 개요를 풍부한 사진과 함께 보고되었습니다. 三内丸山유적으로부터 시작되는 조사는 다음날 이후 동북 최고의 水田耕作跡・垂柳遺跡를 둘러싸고 중세를 대표하는 항만유적・十三湊를 조사. 헤이안 시대의 防御静性취락・高屋敷館유적 외 唐川城・福島城・勝山館 등 安藤氏 관련의 유적을 참관하고 志海苔館의 古銭은 시립 하코다테박물관에서 実見. 출토지도 방문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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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10 일 개최 프로그램 1.인사(鶴間和幸) 2.2006년도 공동연구의 개요(村松弘一) 3.섹션Ⅰ 연구계획 보고 ○황하하류반(市来弘志) ○해항해운반(福島恵) ○운하반(浜川栄) ○재해반(村松弘一) ○수리기술반(村松弘一) 4.섹션 Ⅱ 연구계획 보고 ○교류 네트워크 반(下田誠) ○사상과 지식의 네트워크 반(大澤顕浩) 먼저 코디네이터인 鶴間和幸 교수님이 여름방학 이후에 실시되는 공동 조사에 대한 기대를 언급하였습니다. 이어서 村松弘一 선생이 2006년도 공동연구의 개요를 보고하였습니다. 【섹션Ⅰ】 황하하류반은 9월 1일~10일의 일정으로 실시되는 内黄縣 三楊莊 유적을 중심으로 한 황하 故河道의 조사에 대하여, 港班은12월29일~1월7일까지 실시되는 泉州・福州・寧波의 조사에 대하여, 운하반은 7월28일~8월4일까지 실시되는「カン溝」조사에 대하여, 재해반은 재해 데이터의 분담・진척과 과제에 대하여, 수리기술반은 12월 중순부터 하순에 걸쳐 실시될 예정인 벽골제 조사와 한국측의 매칭펀드에 대하여, 각각 발표하였습니다. 【섹션Ⅱ】 교류 네트워크 반은 8월8일~11일에 실시되는 十三湊를 중심으로 한 일본해(동해) 조사에 대하여, 사상과 지식의 교류반은 11월 11일이나 18일에 실시될 제2회 동아시아해 문명 세미나(심포지엄) 「수당시기 동아시아 불교의 종파의식」과 10월20~22일에 실시되는 多久聖廟 조사・長崎 문물 조사에 대하여 보고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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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6월2일 개최 浜川栄(일본 共立女子大学 강사) 「崇明島 조사기」 牧飛鳥(일본 학습원대학 대학원 박사과정) 「금후의 연구계획」 浜川栄 선생은 3월 23일에 실시된 上海 崇明島의 조사에 대하여, 연혁에서부터 현재의 산업에 이르기까지 보고하였습니다. 崇明島는 중국에서는 제3의 섬으로 여겨지는, 장강 하구의 中州입니다. 역대 섬의 크기에는 변화가 있어서, 발표자는 地方志보다「沙」의 증가와 田地의 증가에 주목하였습니다. 풍부한 사진 자료로 당일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牧飛鳥는 본인이 지금까지 연구해온 일본 고대사에 있어서 贈位의 문제에 대하여, 연구사를 소개하고 贈位制에 관한 연구가 부족한 現狀을 지적하였습니다. 또 贈位制 도입에 있어서 한반도 루트의 검토를 행할 필요성과 금후의 과제에 대해서도 제시하였습니다. 참석자들로부터 追贈과의 관련이나 散官과 蔭位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贈位의 실시에 있어서는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의 무엇을 모델로 했는가가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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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27일 개최 中村威也(일본 학습원대학 강사) 「울산 조사기」 田中大喜(일본 駒場東邦中・高等学校 교사) 「오끼나와 대형 구스쿠(グスク) 조사기」 鶴間和幸(일본 학습원대학 문학부 교수) 「楽浪漢墓・고구려 벽화 조사 보고」 中村威也 선생은 3월 26일에 실시된 한국 울산의 왜성(서생포 왜성・ 울산왜성)에 관한 조사와 장생포 고래박물관의 참관, 「삼포왜관(1420년대 무렵부터 일본인의 거류지)」의 하나인 염포의 방문에 대하여 보고하였습니다. 서생포 왜성의 석축에 대해서는 조선시대 북쪽 지방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설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서생포 왜성의 석축 전부를 구성한 것은 아니며, 앞으로의 연구가 기대됩니다. 田中大喜 선생은 3월 19일에 실시된 오끼나와 구스쿠의 조사에 대하여 보고하였습니다. 조사대상(中城・勝連城・座喜味城・浦添城)을 中山 왕권의 중추부를 구성한 구스쿠로 개괄한 뒤, 구스쿠 연구의 현상과 조사 대상을 재확인하고, 오끼나와 대형 구스쿠의 특색을 전국시대 「일본」성곽과 비교하여 보고하였습니다. 방어기능이었던 것에서 건축의 멋을 「보여준다」는 것으로 의식이 변해갔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코디네이터인 鶴間和幸 교수는, 4월 7일부터 11일에 걸쳐 平山郁夫 교수와 함께 방문한 북한의 楽浪漢墓와 고구려 벽화에 대하여 보고하였습니다. 평양 시가지 일대에는 楽浪漢墓가2000~3000 규모로 존재한다고 하며, 발굴 장면 외에 출토품(木馬・玉器・漆器 등)의 전시에 대하여 영상을 곁들여 보고하였습니다. 漢 문화와 현지(낙랑)문화의 교착이 흥미가 가는 부분입니다. 또 평소에는 잘 접할 수 없는 평양 시내의 모습과 사람들의 일상생활도 언급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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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15일 개최 菅野恵美(일본 文教大学 강사) 「황하 하류 유역의 공간에 대한 視點」 長谷川順二(일본 학습원대학 박사과정) 「전한 시대 황하 河道의 복원 -内黄縣 内黄莊 유적과 전한 황하와의 관련-」 菅野恵美 선생은 황하 하류 유역의 공간에 대한 시점과 자신의 지금까지의 漢代 墓葬 裝飾(畵像石・畵像磚)에 대한 연구를 재정리하고, 아울러 자신이 속한 운하반의 앞으로의 연구방향에 대하여 보고하였습니다. 戰國・秦漢 시기, 異文化・政治集團을 병존시킨 황하 하류 유역이라는 공간에서 동아시아해 문명의 祖形을 볼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하였습니다. 長谷川順二 씨는 2월 22일 일본의 각 신문에 게재된 최신의 발굴보고인 河南省 内黄縣 三楊莊 유적과 前漢 황하와의 관련에 대하여 보고하였습니다. 新華社의 사진을 곁들여 자신의 견해를 언급하였습니다. 황하하류반의 금년도 조사 대상도 생각해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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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27일 개최 福島恵(일본 학습원대학 대학원 박사과정) 「소그드 인과 동아시아해 –일본에 있어서의 소그드 인의 形跡―」 大多和朋子(일본 학습원대학 대학원 박사과정) 「遊女의 향상을 통해 본 동아시아해 ―川・津・舟―」 福島恵 씨는 섹션Ⅱ의 방침과 관련되는「인적 네트워크」와 「물적 네트워크」의 2장으로 구성하여, 일본에 있어서의 소그드 인의 족적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보고에서는 소그드 상인과 신라 상인, 對日 唐 상인의 활동망이 겹쳐지는 것을 지적하고, 소그드 상인과 신라 상인의 교역 형태의 비교에 의욕을 나타냈습니다. 앞으로는 이미 소개된 형적 하나하나에 세밀한 추적이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大多和朋子 씨는 遊女의 정의, 기원에서부터 시작하여 유녀의 集住地・就業形態에 대하여 언급하고, 유녀 연구의 의의로서 家族史・權力論에로의 전망을 제시하였습니다. 보고에 대해서는, 船에서의 취업형태를 취한 이유에 대한 질문이 있었고, 또 유녀와 함께, 바다를 건넌 여성에 대해서도 추적했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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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19일 개최 村松弘一 (일본 학습원대학 동양문화연구소 조수) 「물과 사람의 동아시아해 문명사를 생각한다」 下田誠(일본 東京學藝大學 강사) 「중국 동북지구 해외조사 보고」 村松弘一 선생은 동아시아에 있어서 陂池文化와 관련하여 敷葉工法・草土法의 확산을 중국・한반도・일본에서 조사 연구해 가겠다고 언급하였습니다. 한국 전라북도 김제시의 벽골제에 관한 조사를 12월 하순으로 예정해 놓았다고 합니다. 下田誠 선생은 작년 12월 하순에 실시된 중국 동북지구 조사(大連・長春・瀋陽・北京)와 관련하여, 大連의 港湾史的 위치와 자료 조사의 개요를 보고하였습니다. 渤海・黄海에 면한 요동・산동 루트의 연구는 본 사업에 있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부분입니다. |